2020년 1월 MBA 입학
3월까지 적응한답시고 정신이 없었다.
6월쯤이었을려나 슬슬 적응이 되었지만,
내가 지불한 돈의 값어치에 상응하는 배움을 얻기 위해선 부가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한 노력은 당연히 수반되는 것임에도 나는 지쳤고, 힘들다는 핑계로 노력하지 않았다.
9월, 인공위성 이미지 AI 솔루션 스타트업과 컨설팅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나 여전히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흐름에 몸을 맡겼을 뿐 영혼없는 행동들이었다.
11월 모든 과정이 종료되었고, 이제 쉴 수 있다는 핑계로 12월까지 쉬었다.
2021년 1월이 됨과 동시에 주식을 시작했고,
열심히 하는 것은 좋았으나 2월까지 날려보낸 시간 대비 수익은 없었다.
3월에 되어서야 현실이 눈에 들어왔고, 이제 더 이상 Rent를 미룰 수 없었다.
이사를 하기 위해 부단히 집을 알아보았으나 세상 이렇게 힘든 일이 있을 수 없었다.
너무 힘들었다. 거지같은 나라다 독일은.
무려 2개월간 풀타임으로 노력한 끝에 간신히 이사를 할 수 있었다.
비록 완벽한 비용에 완벽한 구조는 아니었지만 위치는 마음에 들었다.
계약도 2년으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기 때문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4월 16일에 이사를 들어왔고,
맨바닥과 천장, 주방만 있는 이 집에서 살기 위해 아마존을 헤집으며 필요한 것들을 장만해나갔다.
또 그렇게 좋은 핑계를 가지고 1개월을 보냈더니 어느덧 5월이었다.
이제 그쯤하면 되었다는 생각에 슬슬 시동을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4월에 고작 2개의 원서를 내고, 5월에 고작 4개의 원서를 냈을 뿐이었다.
그 외에 실행한 프로젝트나 자격증이나 공부따윈 없었다. 그저 앉아서 시간만 축낼뿐이었다.
무얼해야 할지도 갈피를 잡기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없었고, 직장을 구해야한다는 사명감이라던가, 동기가 전혀 없었다.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빽도 없고 쥐뿔 가진것도 없는데 정작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나 의지조차 피어나지 않는 내 자신이 걱정을 넘어서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또 그냥 나 스스로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시간을 허투로 보내는 잉여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6월이 되었다.
3주간 11개의 원서를 내보았다.
이미 지원한지 2주가 넘은 원서는 수명이 다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어차피 회사들도 일일히 답을 하지 않고, 그들이 필요했으면 진작에 연락이 왔을 것이다.
최근 몇 개의 퇴짜 메일을 받았다. 괜찮았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나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커리큘럼 속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 친구들이
지금은 한참은 멀리 앞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그 어느 누구도 나처럼 허송세월을 보내진 않은 것 같다.
흔히들 말하는 임포스터 신드롬일까 싶지만 이게 그냥 내가 놀아제낀 결과일 뿐이다.
하다못해 그들이 되도 않는 독일어를 공부하면서 A1, A2를 딸 때,
나는 코웃음치면서 아베체데조차 시작하지 않았다.
그저 과거에 보낸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애새끼처럼 징징거리며 놀핑계만 찾았다.
심지어 잘 논 것도 아니다.
집에 앉아 있으면서 유투브만 봤다. 유머사이트에 올라오는 가십도 아닌 개쓰레기같은 컨텐츠들만 보면서 희희낙낙했다.
내 자신이 한심하다.
이제 35살이다. 약 3년 있으면 40에 더 가깝다.
즉, 지금 구하는 직장에서 더 이상의 이직은 어려울 수 있다.
내가 왜 대학을 그렇게 오랜 기간 질질 끌면서 다녔을까 후회가 요즘처럼 많이 드는 때가 없었다.
요새는 후회막급이다. 나이가 너무 많이 찼다. 고작 회사 6년 다녔을 뿐인데..
남들처럼 내가 내 위치에서 번듯한 수치로 보여지는 성과하나 챙기지 못했고,
그렇다고 내가 잘하는 특기하나 만들어 두지 못했다.
그저 00동 R&D센터 2층에 숨어 앉아서 중요한 시기를 다 보내버렸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고, 현실의 부조리함만 읊으면서 탈피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애새끼처럼 생각했다. 너무 어리다.
노력하지 않고 그냥 흘러보낸 시간들이 너무 길다.
너무 속상하다.
과거에 얽매여 생긴 이상한 습관들도 떨치고 싶지만 그렇게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애초부터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까먹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너무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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